찔레꽃 전설동화
고려시대 강원도 어느 산골 마을에 찔레라는 어여쁜 처녀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찔레는 마을에서 소문난 미인일 뿐만 아니라 효성도 지극해서
총각들 사이에서 흠모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찔레 걱정이었습니다.
"찔레야, 너도 이제 나이가 찼으니 혼례를 치러야 하지 않겠니?"
"아니에요. 아버님, 아버지를 두고 제가 어딜 가겠어요?"
"아니야, 내 걱정일랑 하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거라.
그게 효도니라."
"아버님, 내년에 복사꽃이 필 무렵에 시집을 갈게요.
한 해만 아버님을 더 모시게 해 주세요."
"참, 고집도... 아직 아비는 젊잖니."
"아버지, 그러지 마시고 새어머니를 모시면 좋을 것 같은데..."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라. 난 너 하나면 됐다."
찔레의 어머니는 난산으로 찔레를 나았고,
찔레를 낳던 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젖동냥을 해가면서 찔레를 키웠습니다.
주위에서 새 장가를 가라는 권유도 많았지만 찔레를 홀로 키웠던 것입니다.
그런 세월이 벌써 이십 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몽골이라는 나라에서 쳐들어왔다는 소문이
그 산골까지 들려왔습니다.
이미 몽골 사람들이 진부령을 넘어 용대리까지 점령을 했고,
강원도 그 산골마을도
머지않아 몽골 사람들이 밀고 들어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소집령이 내렸고,
찔레 아버지는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결국 몽골이라는 나라는 이내 강원도를 지나
탐라국이라 불리는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평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찔레는 전쟁터에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이듬해 복사꽃이 필 때까지도 아버지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던 찔레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몽골이라는 나라에 고려의 예쁜 처녀들을 바쳐야 하는데
찔레가 그 한 처녀로 지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찔레는 기다리던 아버지를 만나지도 못하고,
생사확인도 못하고 몽골이라는 나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찔레는 마음씨 좋은 몽골사람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고
비록 적국의 나라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보, 당신의 얼굴에는 늘 슬픔이 가득하구려."
"미안해요. 그러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아버지를 생각하면..."
"알았소. 그러면 이번 봄에 고향에 한번 다녀오시구려.
그러나 그 때는 슬픈 얼굴일랑 지워버려야 하오."
찔레는 복사꽃이 필 무렵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찔레의 집은 이미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찔레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찔레야, 네가 몽골로 끌려가고 다음 날인가 네 아버지가 돌아왔단다.
전쟁터에서 다리를 하나 잃은 모양이야.
다리만 잃지 않았어도 하루라도 빨리 집에 올 수 있었다며
밤 새워 울다가 다음 날 너를 찾아간다고 몽골로 떠났단다."
찔레는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지만
몽골로 자기를 찾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습니다.
어서 몽골로 돌아가 아버지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에
급하게 다시 몽골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찔레가 그 곳에 돌아갔을 때
들려온 소식은 더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당신이 떠난 다음 날, 목발을 집고 고려인 걸인 한 명이 찾아왔다오."
"목발이요? 나이가 얼마나 되어 보이던가요?"
"한 오십 되었을까...아니, 고생을 해서 그럴지도 모르니 사십 중반일지도..."
"그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예요. 목발을 집은 그 분이 바로 아버지라구요."
"전쟁터에 나가셨다고 들었는데? 장애가 있었다면..."
"전쟁터에서 다리를 다치신 거라구요."
"..."
그러나 이미 찔레가 살고 있는 동네에 목발을 집고 다니는 걸인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미 몽골에서 고려로 오가는 길이 달포 이상씩 걸렸기 때문입니다.
찔레는 그 날 이후 아버지가 더욱 더 그리웠습니다.
'지금 어디에서 나를 찾고 계실까?'
더욱 더 슬픔의 그림자가 가득한 찔레를 보면서
남편은 다시 한번 고향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온 찔레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고,
아버지를 다시 보았다는 이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분명, 몽골 어딘가에서 나를 찾아 헤매시고 계실 거야. 아버지...'
그러나 그렇게 하루 사이로 엇갈린 아버지와의 만남이
이번에도 계속될 것 같아서 찔레는 폐허가 된 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 날 이후 찔레는 혹시라도 아버지가 올까
동네에서 가장 높은 산등성이에 올라가고,
혹시라도 고향으로 돌아오던 아버지가 풀섶에 쓰러져 계실까
풀섶을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찔레가,
그 고운 찔레가 미쳤다고들 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찔레는 결국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아버지를 찾아다니던 풀섶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찔레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가 늘 아버지를 기다리던 산등성이에 묻어주었습니다.
이듬해 봄,
찔레의 무덤에서는 가시를 성성하게 달고는
가냘프고 푸른 줄기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줄기들은 찔레가 아버지를 찾아다니다
앉아 울던 곳마다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여기저기 가시성성한 줄기가 돋아나고 이파리가 돋자
사람들은 그것을 '찔레'라고 불렀습니다.
복사꽃이 필 무렵,
저 산등성이 넘어 한 걸인이 노을 빛을 받으며
긴 그림자를 절룩거리며 마을 어귀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찔레아범! 어디 갔다가..."
아버지는 찔레의 무덤에 찾아가 슬피 울었습니다.
그때 그 새순에서 하얀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꽃은 발그스름하던 찔레의 얼굴을 닮기도 했습니다.
"찔레야!"
가시성성한 줄기는 걸인의 옷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습니다.
그 가시는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걸인의 옷을 꽉 잡았습니다.
"아버지, 힘드셨죠? 저도 힘들었어요, 그리웠어요... 외로웠다구요."
가져온 곳-아름다운 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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