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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꽃향유를 찾아 좌보미로

◈ 라헬 ◈ 2006. 3. 17. 10:47

고평열 시민기자 rhvudduf@hanmail.net

 



그래도 특별히 좌보미를 선택했다.
이유있는 선택은 아니었다.
그냥 좌보미가 떠올랐을 뿐...
몇 번을 다녀온 길이면서 늘 그렇듯이 다시 길을 잃었다.
들어가고 나오고를 몇 번 반복하고나서 그리고 찾아든 좌보미.

무덤에 헌화된 꽃향유의 무리가 눈으로 확 안겨온다.
바람 무쟝 분다.

삼각대를 세우고 이리저리 돌아댕기며 꽃향유와 노는 동안
풍이랑 향이는 늙은 고양이처럼 양지바른 무덤가에 앉아
삶은 고구마를 야금야금 먹는다.
내 몰카의 랜즈가 그리로 향하는 줄 까맣게 모른채로.



모여 핀 꽃향유는 특별히 아름답다.
군락을 이루어 피어나 오름을 붉게 물들이는 꽃향유는
오름이 갈아입는 옷 중의 하나다.

오늘 오름에서의 만남을 위해 꽃향유를 선택한 건
특별히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시기에 피어나기 때문이고,
지금 내 마음 속에 떠올랐기 때문이고.
흔해서 쉬이 다가갈 수 있음도 이유이고...

다양한 이유로 우린 그 무엇인가를 만난다.
모든 만남에 '왜?'라고 물음표를 반드시 붙여야 하는 건 아닌데.



드물게..아주 드물게
돌연변이처럼 흰 꽃이 피어난다.
온통 붉은 꽃향유속에 흰꽃은 도드라지게 빛을 발한다.



붉은 계열의 꽃 색은 특별히 변색이 많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한다.
희도 붉지도 않은 반종이다.

그러게.
꽃향유는 오름을 물들이며 볽오롱허게 피어라.
어제의 팽이와 오늘의 팽이는 무엇이 다르더냐?
팽이는 그져 오름속으로 꽃을 찾아 여전히 다닐 뿐...



뜨거운 한여름을 여름보다 더 뜨겁게 살았노라고 감히 자부하는 건
잠 부족한 눈 게슴츠레 달래며 버섯과 함께 오름속을 원없이 뒹굴었다고 생각하고 있음이니...



내년 여름이 되어도
아마 팽이는 여전히 꽃을 찾아, 버섯을 찾아 오름속을 헤메고 있을터이다.
해야 할 것..하고픈 것...옆구리에 주렁주렁 매달고...
찢어진 청바지를 버리지 못한 채
나이 한 살 더 먹는 만큼의 주름살 몇 올 더 이마에 그으며
팽이는 그렇게 팽이에게 남겨진 시간들을 살아 낼 것이다.



훼손의 자리는 아프다.
그러나 꽃향유는 다시 자리잡아 피어나고 있다.
언제나 그렇다.

잃어서 아쉬운 것.

대신 다시 얻게 되는 그 무엇.

사그러들어가는 나의 시간들을
아무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가는 세월 만큼의 그 무엇을 나는 당연히 얻어내고 싶다.

내게 남은 상처의 자리가 있다면
다시 그 무엇으로 이렇게 덮으리...

출처 : 팽이의 정원
글쓴이 : 팽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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