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특별히 좌보미를 선택했다. 이유있는 선택은 아니었다. 그냥 좌보미가 떠올랐을 뿐... 몇 번을 다녀온
길이면서 늘 그렇듯이 다시 길을 잃었다. 들어가고 나오고를 몇 번 반복하고나서 그리고 찾아든 좌보미.
무덤에 헌화된 꽃향유의
무리가 눈으로 확 안겨온다. 바람 무쟝 분다.
삼각대를 세우고 이리저리 돌아댕기며 꽃향유와 노는 동안 풍이랑 향이는
늙은 고양이처럼 양지바른 무덤가에 앉아 삶은 고구마를 야금야금 먹는다. 내 몰카의 랜즈가 그리로 향하는 줄 까맣게
모른채로.
모여
핀 꽃향유는 특별히 아름답다. 군락을 이루어 피어나 오름을 붉게 물들이는 꽃향유는 오름이 갈아입는 옷 중의
하나다.
오늘 오름에서의 만남을 위해 꽃향유를 선택한 건 특별히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시기에 피어나기
때문이고, 지금 내 마음 속에 떠올랐기 때문이고. 흔해서 쉬이 다가갈 수 있음도 이유이고...
다양한 이유로 우린 그 무엇인가를 만난다. 모든 만남에 '왜?'라고 물음표를 반드시 붙여야 하는 건 아닌데.
드물게..아주
드물게 돌연변이처럼 흰 꽃이 피어난다. 온통 붉은 꽃향유속에 흰꽃은 도드라지게 빛을 발한다.
붉은
계열의 꽃 색은 특별히 변색이 많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한다. 희도 붉지도 않은 반종이다.
그러게. 꽃향유는 오름을
물들이며 볽오롱허게 피어라. 어제의 팽이와 오늘의 팽이는 무엇이 다르더냐? 팽이는 그져 오름속으로 꽃을 찾아 여전히 다닐 뿐...
뜨거운
한여름을 여름보다 더 뜨겁게 살았노라고 감히 자부하는 건 잠 부족한 눈 게슴츠레 달래며 버섯과 함께 오름속을 원없이 뒹굴었다고 생각하고
있음이니...
내년
여름이 되어도 아마 팽이는 여전히 꽃을 찾아, 버섯을 찾아 오름속을 헤메고 있을터이다. 해야 할 것..하고픈 것...옆구리에 주렁주렁
매달고... 찢어진 청바지를 버리지 못한 채 나이 한 살 더 먹는 만큼의 주름살 몇 올 더 이마에 그으며 팽이는 그렇게
팽이에게 남겨진 시간들을 살아 낼 것이다.
훼손의
자리는 아프다. 그러나 꽃향유는 다시 자리잡아 피어나고 있다. 언제나 그렇다.
잃어서 아쉬운 것.
대신 다시
얻게 되는 그 무엇.
사그러들어가는 나의 시간들을 아무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가는 세월 만큼의 그 무엇을 나는
당연히 얻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