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여름 석달을 물찻오름에서 살았다. 넘쳐나는 생명의 활기로 풍요로웠던 곳, 순간순간 찾아드는 적막함이 가슴시리게 아름다웠던 물찻오름. ![]() 눈을 감으면 들리는 소리는 아름드리 서어나무의 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 잎 넓은 사람주나무에 앉아 쉬어가는 햇살의 웃음소리, 딱따구리의 노동요, 휘파람새의 유혹의 노래, 구국~ 거리는산비둘기의 삶의 넋두리... ![]() 물찻오름 입구에 차를 세우면, 하늘보다 넓은 숲이 그 곳에 있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자신을 형상화 시키면서 숲으로 내려와 쪽동백나무의 펑퍼짐한 잎사귀에 텅~~하니 내려 앉으면, 쪽동백나무는 감당할수 없는 무게로 출렁인다. 아름드리 교목들과 키 큰 나무들을 칭칭 감아 올라 간 등수국, 바위수국, 송악등의 넝쿨식물들이 천연원시림의 향기와 습기를 만들어 내고, 산수국과 관중, 조릿대 등은 사람의 눈 높이 아래에서 그 푸르름이 무성하다. ![]() 여름과 가을을 가르는 길목에선 물봉선이 제일 눈에 띈다. 가느다란 줄기 끝에 목이 긴 여인처럼 서 있다가는 한 줄기 미풍에도 소스라치곤 한다. 반그늘이 드리워진 환경을 찾아 으슥한 도랑가 쯤에 탱글탱글 여믄 씨방을 한 두 개씩 매달고는 누군가 지나면서 자신을 건드려주길 바란다. 어쩌다 스친 옷깃에도 자지러지게 톡톡 터지는 물봉선의 씨방.. 일 없이 죄지은 사람처럼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으로 들여다 보면 물봉선은 배시시 웃고 있다. 그렇게 터져서 멀리멀리 종자를 튕겨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봉선인 것이다. ![]() 비록 인간의 기준에서 이름 지워졌지만 한 장소에서 헝클어지듯 어우러져 사는, 그 녀석이 그 녀석 같은 식물들을 사람의 얼굴 익히듯 하나하나 이름을 익혀가는 재미는 사뭇 쏠쏠하다. ![]() 이름 모를 나무, 이름 모를 들꽃이 산딸나무가 되고 누린내풀이 되고 눈물버섯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알고져 다가가는 그 과정에서 싹트는 애정은 즐기기 위하여 자연을 찾기 시작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승화시켜 놓는다. 그들과 팽이는 동등하게 눈높이를 맞추어 니나내나 다를 바 없는 자연속의 한 부분임을 깨닿게 만드는 것이다. ![]() 9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사람주나무잎에서부터 가을이 왔다. 많지는 않지만 억새꽃이 붉으레하니 피어나 제법 가을길을 만들어 내고, 산딸나무 열매가 빠알갛게 익어간다. 임도 어느만치서 툭툭 벌어져 떨어지던 밤송이, 으름도 주렁주렁 달려 풍성함을 보탠다. ![]() 본래 산열매는 산새들의 몫이겠지만 쩍 벌어진 으름을 보고는 욕심이 동해서 서너 개를 약탈하고 말았다. 내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배가 고파 먹이가 필요한 게 아니면서, 인간은 필요 이상의 그 무엇을 항상 얻으려 하는 욕심쟁이, 그래서 자연의 약탈자일 수 밖에.. 인간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선 떨어진 밤송이, 혹은 도토리조차도 다람쥐의 겨울식량이 아니고 감성의 사치품으로 사람이 주어가고 마는 것이다. ![]() 한 종의 야생버섯이라도 더 찾아보려고 무릎으로 기어다니다시피 보낸 물찻오름에서의 여름, 버섯들의 번식기도 이제 끝나가므로 그들은 다시 한 해 동안 지하세계로 침잠해 들 것이다. 2005년의 여름은 숲과 버섯과 벌레 물린 두드러기와 함께 그 곳에서 흘린 땀방울만큼 아름다웠다. ![]() 숲 속 나무의 그림자가 고무줄처럼 길어져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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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팽이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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